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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피스커피 현장을 가다_'아나의 꿈'
peacecoffee 조회수:1959 125.128.5.174
2015-05-26 19:29:00

동티모르 피스커피 현장을 가다.

- 동티모르 현지에서 ‘정창효 차장’이 보내온 편지

동티모르는 동남아시아의 티모르 섬에 위치한 공화국이며, 지리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와 인도네시아 경계인 티모르 섬 동쪽과 서티모르 북쪽의 일부와 도서로 이루어져 있다. 동티모르는 긴 식민지 역사를 가지고 있다. 1500년대부터 약 400년의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있었으며 25년간의 인도네시아 지배를 받다 2002년에 최종 독립을 한 신생국이다. 식민지 역사의 흔적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언어는 현지어인 떼뚬어와 인도네시아어, 포르투갈어를 같이 사용하고, 종교는 포르투갈의 영향으로 대부분 국민이 가톨릭이다.

한국YMCA가 동티모르 지원 및 재건사업의 하나로 ‘공정무역 커피 사업’을 한 지도 약 10년이 되어간다. 현지에서 커피를 생산하고 동티모르 현지법인이 공정무역 커피(green bean)를 한국에 판매하고 있다. 또한 수도 딜리에 카페를 오픈하여 2년째 운영 중이다. 이 카페는 아직 동티모르에 없는 사회적기업을 지향하고, 카페문화를 통해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수도 딜리에 오픈한 PEACE COFFEE 카페 입구 모습.

주로 카페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학생을 포함한 청년, 공무원 등 현지인과 각 국의 NGO단체 직원들이다. 카페는 점심시간이 되면 1층 테이블이 모두 차고, 테이크아웃 주문이 계속 이어진다. 3명의 직원이 쉴 새 없이 커피를 추출하고 메뉴를 만들어 낸다. 그들은 피곤한 기색도 없이 밀려드는 손님들 한명 한명을 친구처럼 반갑게 맞이한다.

점심시간 우리나라 여느 카페와 다름없이 딜리의 Peace coffe 카페 또한 손님들로 가득 찬다. 테이블 마다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이 카페가 딜리 사람들의 소통의 장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현재 아나(Mariana Barreto), 도라(Teodora Soares), 다비드(Jaqueu David Da Costa Fernandes) 총 3명이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고, 3월부터 나는 일을 도와주고 있고 있다. 분위기는 항상 밝고 즐겁다. 손님들의 방문에 직원들의 친절과 미소로 답하는 카페의 분위기는 카페 문화 그자체가 아닌가 한다.

 

좌측 뒤쪽에 앉아 웃고 있는 ‘아나’, 그 옆이 ‘다비드’, 우측이 ‘도라’다.

 

그 가운데 맏언니 격인 ‘아나(Mariana Barreto)’가 있다. 가정형편으로 늦게 대학에 진학하여 일과 학업을 같이 하는 당찬 동티모르 여성이다. 오늘 그녀와 함께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해 보려한다.

 

아나의 꿈...

일주일 중 가장 한가한 토요일 오전에 그녀를 카페에서 만났다.

bondia mana ana~ diak ka lae? diak~(아침인사로 안녕하세요. 어떻게 지내나요? 잘지요)

서로 동티모르 인사를 하고 반갑게 만났다~~

오늘의 주인공 아나(Mariana Barreto)의 이야기를 들어 볼가.

 

마나 아나의 고향은 딜리(수도)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 데, 어린 시절의 생활과 딜리에서의 생활은 어떠한가

어린 시절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부모님과 함께 살지 못하고, 작은 아버지 가족과 함께 살았다. (그녀는 그때를 생각하면 목이 메는 것을 느꼈고 말을 아꼈다.) 부모님은 고향에 계시며, 가끔씩 전화로만 연락을 하고 있다. 수업과 일 때문에 시간이 나지 않아 집에 자주 갈 수는 없다. 초등학교 4년 때 독립전쟁이 시작되면서 작은 아버지 가족과 함께 티모르 섬의 서쪽 현재 인도네시아 지역으로 피난하여 2년 정도 살다, 동티모르가 독립하면서 딜리에서 큰오빠와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딜리에서의 생활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을 했었고, 가정형편상 졸업 후 바로 대학을 진학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대학등록금을 저축하고 틈틈이 컴퓨터 등을 배웠다. 그리고 대학 진학을 하게 되었는데, 기쁨도 잠시 가장 의지했던 큰오빠가 병으로 죽고, 연이어 1년 4개월 후에 새언니까지 하늘나라로 가며 조카 4명과 저만 남았다. 현재 저의 월급과 형제들의 도움으로 조카들을 돌보며 생활하고 있다.

 

생활비가 부족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조카들의 학교는 무상이거나 월 5불정도의 등록금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기에, 생활비가 적지만 부족하지는 않다며 미소로 답하였다. 어린 나이에 가족을 책임지게 된 그녀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울지...

 

피스커피와 함께 일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며, 카페 일은 어떤가?

고등학교부터 YMCA활동을 했었고, 졸업 후 YMCA에서 번역작업을 도운 인연으로 카페 일을 소개받았다. 아마 2014년 6월부터 일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만약 피스커피에서 일을 할 수 없었다면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을 것이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다른 회사는 일을 하면서 수업을 들을 수 없고, 혹시 아플 때 병원을 가서 쉬게 되면 급여가 깎이기 때문에 아프더라도 쉽게 쉴 수가 없다. 그러나 피스커피 카페는 일하면서 학교 가는 것도 가능하고, 증빙서류를 제출하면 맘 편하게 쉴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페에서 일하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좋고, 손님들의 이야기 듣는 것도 즐겁다. 남들이 선호하는 회사도 좋지만, 이렇게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과 학업을 동시에 하고 있는데, 힘들지는 않은가?

처음은 힘들었지만 지금은 익숙해지면서 많이 좋아졌다. 카페 일하다 학교 수업을 듣기 위해 버스타고, 다시 카페로 와서 퇴근하고, 집에 가면 조카들을 돌보고, 거의 쉴 시간이 없다. 거기다 과제까지 있으면 몸이 열이라도 부족하다. 일주일에 5일을 그렇게 하고 토요일은 수업이 없어 카페에서 종일 일을 하면서 한 주가 끝이 난다.(그러나 그녀 얼굴에는 피곤한 표정은 찾기 힘들다.)

조카들을 돌보고, 일하며 수업을 듣고 하는 이 모든 것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하기 싫다는 생각이나 회의감)이 들면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한다. 내 일이라고 받아들이니 슬퍼할 일도, 피곤한 일도 없어졌다.

 

현재 필요하거나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카페에서 학교를 오가는 시간이 낭비되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해서 교통수단을 마련하는 것이 지금의 목표다. 작은 오토바이정도를 생각하고 돈을 저축하고 있다. (아버지께서도 도와주신다.)

은행에서 일을 하고 싶어 회계를 전공하고 있지만 카페 일을 하면서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등 미래에 관해 많은 고민이 생겼다. 그리고 지금은 그 일을 찾은 것 같다. 카페에서 일하고 있으면 에너지도 넘치고, 일도 자신 있게 할 수 있고, 손님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도 즐겁다. 그래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작은 카페를 운영해 보고 싶다.

활짝 웃으며 주문을 받고 있는 ‘아나’와 ‘다비드’. 세 청년이 짓는 싱그러운 미소에 주문하는 손님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핀다.

그녀는 이야기하는 내내 수줍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인터뷰가 끝나고도 그녀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맴돌고 맴돌아 메아리로 돌아온다. 그녀는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푸른 들판을 지키는 풀처럼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녀의 꿈을 응원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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