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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2015 공정무역 산지 방문기
카페티모르 조회수:4176 1.237.143.201
2015-08-21 02:06:00

2015 공정무역 커피의 현장, 동티모르를 다녀와서

[티모르(timor-leste)에서 투모로우(tomorrow) 를 보다]

글 : 한석규

글쓴이 한석규 님은,

사회적기업 카페티모르의 이사이면서 시니어사회봉사법인인 (사)사회공헌 렛츠의 대표다. 인생 전반기의 전문성과 관록으로 제2의 인생이모작시기를 누구보다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의미 있고 보람있는 삶을 어떻게 사회에 환원할 것인가를 고민하시는 열렬 시니어 활동가이시다. skhan9515@naver.com

(주)카페티모르 조여호 대표로부터 지난 5월4일 한통의 메시지를 받는다.

이메일을 보냈으니 확인 후 답변을 달라고― “2015년 동티모르 커피산지 현지를 방문하는 투어프로그램을 하고자 합니다. (7월6일(월)~12일(일) 6박7일간)”는 내용이다. 커피에 대한 관심이 높은 때에 커피 산지를 방문하여 현장 체험할 기회가 생기니, “가겠습니다.” 라고 단방에 답을 보낸다.

사실 커피는 ‘커피 문화’가 형성되고 더욱 더 고급화 추세로 이어지고 있어 시장의 지속적인 팽창이 이루어지 있는 중으로, 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연 6000억 잔을 소비한다고 한다. 세계 70억 인구가 연간 85잔의 커피를 마시는 셈이니 과히 커피는 인류의 으뜸 기호식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하겠다.

 

동티모르의 역사를 간단히 살핀다. 포르투칼의 식민지를 450여년 받은 동쪽은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고, 서쪽은 네덜란드의 식민지로서 이제는 ‘누사텡가라티무르(Nusa Tenggara Timur)’ 라는 이름으로 인도네시아의 한 주(州)가 되었다고 한다.

동티모르의 독립 쟁취 과정은 그야말로 핏빛이었다. 인구 100만 명중 1/3이 학살되다시피 하면서도 독립을 쟁취하여 오늘의 번듯한 동티모르국가를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슬픈 역사를 가진 나라이자 국민이다. 그러나 현지 일정을 함께한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사람 따라 다르겠지만 인도네시아에 대한 감정이 그리 나쁘진 않은 것 같고, 오히려 400년 이상을 지배한 포르투갈에 대해서 감정이 더 좋지 않다고 말한다. 과거와 현실을 감안한 현실주의적 사고에서일까? 인도네시아는 현실이고 포르투갈은 과거일 것이다.

 

대한민국 서울에서 동티모르 커피의 메카 카브라키(Kablaki)와 로뚜뚜(Rotuto)를 향해서 진군한다.

그 선봉장에 (주)카페티모르의 대표 백전노장 조여호 대표, 현지 근무 경험과 떼뚬어에 익숙한 귀염둥이 직원 박새롬 양, 커피에 대한 다양한 맛을 창출하여 고객을 사로잡아 연매출 수억 원을 시현하고 있는 커피소물리에 「웰스커피」이웅렬 대표, 공정무역의 일환으로 동티모르에서 커피 원두를 수입 판매하는 두레생협의 채은옥 대표와 시니어 바리스타 김광열, 이병 그리고 나 총 일곱 분이 대상(隊商)을 이루어 커피의 메카를 향해 이륙한다. 7월 4일 아침 9시가 넘어서다. 온 타임을 목표로 운항하고 있는 싱가포르에어라인의 깔끔한 메뉴와 새 비행기 같은 깨끗한 기내 환경은 장장 6시간의 긴 비행에도 지루하지 않게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안착하고, 이어 발리로 가 1박을 한다. 현지 나미여행사 사장님의 안내로 Harris 호텔에 여장을 푼다. 다음날 아침 간결하면서도 먹을 만한 호텔 조찬을 마치고 발리공항에 도착 스리위자야(sriwijaya) 항공편으로 약 2시간의 비행으로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Dili) 공항에 내린다. 그리고 바로 강행군이다.

 

공항에서 시내 아스팔트 도로를 지나 딜리(Dili) 외곽의 산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건기라 먼지가 안개처럼 휘날린다. 이제나 저제나 도로가 좋아지겠지 하는 기대감을 갖고 상하좌우로 극심하게 흔들리는 차속에서 두리번두리번 바깥을 관광하지만 깎아지른 듯한 가파른 산 고지에 만들어 놓은 도로는 꾸불대기는 뱀의 모습을 닮은 그야말로 신작로는 끝날 줄 모른다. 상하좌우 대각선 방향까지 마구 흔들리는 차 속은 망망대해에서의 일엽편주처럼 흔들리니 위로는 깎아지른 듯 한 산세가, 아래로는 천길만길의 절벽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듯하니 현지 베테랑 중 베테랑의 운전기사를 모셨지만 저절로 오금이 절여오니 이게 바로 진짜 여행이구나 하는 ‘가벼운 멀미 끼를 느낀다.’

 

긴 도로 우리의 지침을 내려놓게 해준 그곳

 

그리고 오전 주행 끝에 옛 포르투갈 당시의 총독부 관저였다는 호텔 Pousada de Maubisse (‘마우베시’ 숙소라는 의미)에 도착하여 1박을 꿈꾼다. 호텔이름도 없는 호텔에서 총독을 자처하며 지내기에는 단출한 분위기다.

커피산지로 가는 길 중간에 하루를 묶은 마우베시 옛 성, 포르투칼 식민시절 지방 총독이 기거하는 일종의 성 같은 건물이다.

 

싱싱하면서도 아주 싱싱한 상추를 깔고 그 위에 토마토를 얇게 썰어 놓은 토마토상추메뉴, 라면 국수를 고기와 볶은 라면볶음, 감자와 당근 등을 삶은 감자조림, 그리고 튀김 닭고기로 이루어진 현지식 점심

대한민국 초기에 외국인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물었단다. 한국에선 목장이 보이지 않는데 어디서 돼지고기를 나오느냐고? 이승만 대통령 왈 “한국엔 집집마다 목장이 있다. 돼지를 집에서 키운다.” 우린 그렇게 집집마다 돼지를 키워 단백질을 공급받았었다. 이제 그 시절의 모습을 동티모르에서 보고 있다. 돼지(우리나라 멧돼지 모습이다)와 놓아먹이는 닭이 주 기르는 대상이다. 인가에는 돼지와 닭 그리고 어린이와 함께 어울려 사는 가축 친화형 공동 주택의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닭고기의 맛이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육질이 쫄깃하고 고소하다. 역시 자연산인가? 관광의 주요 이슈는 역시 먹는 것 음식이라 한마디 언급한다.

 

또 다시, 고지대(약 해발 1,400여m) 에 있는 도로를 따라 가니 그 골곡과 요철이 마치 인생의 삶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약 3시간여의 주행, 주행이 아니다. 그냥 굴러간다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 3시간가량 굴러서 사메(same)에 당도한다. 이곳 시간은 으레 더운 날씨이니 우리나라 여름을 쉽게 생각하여 일출이 빠르고 일몰도 늦으리라 생각하지만 아니다. 아침 7시가 다돼야 동이 트고 저녁 6시면 어둑어둑 해진다. 적도에 가까운 남반부 나라이기 때문이다.

 

동티모르의 멋진 노을.

계절을 물으니 “건기와 우기”로 나눈단다. 지금은 건기란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을 굳이 구분하여 또 물으니 그래도 답은 건기란다. 여긴 남반부이니 굳이 구분한다면 겨울이리라. 그래서인가? 잎이 없는 나무에서 꽃만 덜렁 맺혀 있는 나무들이 많다.

 

사메(Same)에 들러 YMCA의 현장을 본다. 마음이 찡해 온다. 덩그러니 놓인 야전 침대며, 칸만 막아 놓은 듯 한 화장실이며, 시골 농가의 그것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분투하고 있는 한국인의 모습에서 갑자기 1970년대의 중동지역 건설 노동자들이 연관되어 생각이 난다.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 정 차장님과 김기연 간사님의 고로(苦勞)가 무척이나 심할 거다. 산업전사가 따로 있을까?

사메(Same)의 산천은 그야말로 녹음뿐이다. 그 녹음 속에 인간이 점점이 박혀 있는듯하다. 자연을 부리며 사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인간을 안고 사는 현장이다.

커피 생두 수집 처인 동네 가공공장에 이르러 설명을 듣는다. 남녀노소가 모여든다. 생(生)과 관련한 인사들이 왔으니 당연히 관심은 높아질 수밖에 없으리라. 사실 이 부분에서 방문하는 모든 현지인들이 그럴 수밖에 없듯이 어느 정도의 긴장. 경계감, 환영, 각오 등의 표정이다.

 

멍석 위에 널려져 있는 파치먼트(parchment)는 꼭 우리네 시골 가을에 메주콩을 수확하여 멍석 위에 널어놓은 것과 같다.

처음으로 커피나무(사실 커피나무라는 것도 생소하다)에서 수확한 생두를 ‘파치먼트(parchment)’로 만드는 작업. 즉, 생두의 껍질과 육질을 벗겨내는 일을 체험했다. 현지에 설치된 수동식 기계로 체험하며 아직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우리 시니어일행에게 조여호 대표의 시원스런 설명이 이어졌다. “살구는 씨를 둘러싸고 있는 육질을 먹지만 커피는 씨를 싸고 있는 육질을 벗겨내고 그 안에 있는 핵-씨-을 최종적으로 먹는다. 즉 살구와 커피는 반대로 생각하면 된다.” 와! 간단명료한 설명이다.

우리일행은 현지인들과의 호기심어린 인(人)교(交)를 나누고 다시 길은 길이되 길이 아닌 듯 하는 울퉁불퉁한 소로를 따라 강행군을 한다. 마침 학교가 파해 하교하는 어린이들과 조우한다. 사실 도로를 주행하면서 많은 이 나라 어린이 학생들을 보았다. 한결같이 밝은 표정들이다. 커다란 눈망울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참으로 무궁 천진한 모습들이다. 과연 이 천진한 어린이학생들에게 공정무역이란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

 

이어 운전기사를 바꾼 우리 차량은 Y 피스커피의 시발지인 카브라키(Kablaki)에 도착한다. 금 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라 할 수 있는 로뚜뚜(Rotuto)에 가는 길목이다. 사업단위 방식을 바꿔 9개의 소그룹으로 나눠 관리하기 이전까지는 이곳이 주 무대였단다. 깊은 산 속에 현지에서는 제법 큰 건물이 들어서있다. 소위 커피 집중 집하장소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우리 일행이 도착하니 먹음직스러운 환영 음식을 내놓는다. 이곳 현지 아주머니들께서 손수 만든 음식이란다.

음식을 손수 만들어주신 카브라키 주민.

 

세 가지 음식이다. 바나나, 감자, 그리고 ‘카사바‘라는 고구마와 같은 뿌리 음식을 삶아서 내놓는다. 바나나와 카사바를 시식해본다. 구수한 맛이지만 조금 팍팍하여 음료수가 필요하지만 여기서 천천히 먹는다.

고구마와 감자의 중간쯤 맛이 나는 카사바.

 

이곳에서 산을 넘으면 로뚜뚜에 이른다. 로뚜뚜에 가는 유일한 길이란다. 그런데 걱정이 된다. 우기에는 틀림없이 산사태 등으로 길이 막힐 텐데 어떻게 사나? 그 비밀은 현지에 가보니 풀린다. 바로 자급자족이다. 그러니 걱정이 없을게다.

로뚜뚜 마을에 설치된 커피가공용 우물.

 

하늘아래 높은 곳에서 그들은 커피와 더불어 천연덕스럽게 살아가고 있었다. 번듯한 학교가 그들의 문명지표를 말해주듯 하였다. 전기도 하늘에서 받아쓴다. 물도 하늘에서 받아쓴다. 그들은 지혜로웠다. 군데군데 비축용 물탱크를 설치해 놓아 노출된 수도파이프로 물을 나눠 쓰고 있었다. 구름도 쉬어 가는 듯 뒷동네인 듯이 보이는 산 정상에는 구름이 오락가락하며 쉬고 있다. 이곳에 공정무역 바람이 불어 그들의 삶의 희망을 불어넣어주고 있었다.

카브라키에서 로뚜뚜에 이른 좁고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 Y가 사무실 겸 숙소로 쓰는 건물에 무사히 도착한다. 현지에선 제법 그럴싸하게 지어진 건물이다. 일행이 도착하니 현지인들께서 환영의 머플러를 걸어준다. 현지 여인들의 정성으로 직접 짠 직물인 ‘타이즈(Tais)’이다. 깜짝스런 선물이다. 일행 일곱 분 모두에게 한분 한분 번갈아가며 목에 환영의 타이즈를 걸어준다. 이렇게 환대해주시니 고마울 뿐이다. 조물주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미소”라는 감정을 배려하지 않으셨다면 아마 지구상의 인간의 DNA가 달라졌으리라.

타이즈를 목에 걸어주며, 진심으로 환영해 주는 주민들.

 

이어 커피 체험 행사다. 커피산야로 올라가는 도중에 보기에는 촌 노인 인 듯한 분이 길가로 나와 인사를 나눈다. 이곳 촌장이시란다. 그리고 인사말을 나눈다. 방문을 환영하고 좋은 시간 갖고 가시기를 바라고, 내 몸이 불편하여 직접 안내하지 못 함을 미안하게 생각하신다는 말씀에 인류 보편적 선(善) 이 바로 친절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신 마을의 할아버지.

 

나는 흔히 보아온 잘 가꿔진 커피농장쯤으로 생각하고 올라갔다. 그런데 온통 야산에 자연 방목되고 있다. 닭도, 돼지도, 그리고 사람도 자연과 어우러져 방목되고 있는 이곳에서 커피라고 해서 따로 가꾸고 있겠는가? 그야말로 온통 자연산이다. 가꾸고 기른다는 것은 인공(man made) 약품이 닿는다는 뜻 일게다. 그러고 보니 올라가는 길가의 양측에 울타리처럼 자라고 있는 나무들이 온통 커피나무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동티모르의 길가에 온통 새하얀 먼지를 맞고 있는 많은 나무들이 커피나무임에 한 번 더 놀라기도 하다. 이곳 HAKBIT의 야산에 널려있는 커피를 따는 행사다. 사무공간에서 현황을 설명 받은 후 체험행사로 들어간다. 수확의 계절 7월∽9월 약 3개월 여 동안 차츰차츰 익어가는 커피이기 때문에 ‘빨갛게 익은 것만 따라’라는 말과 함께 우르르 커피 밭으로 향한다. 커피트리 중간 중간에 유소년 축구공만한 레몬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설레는 경험이었던 커피 열매 수확 체험.

누구도 눈길한번 주지 않고 커피 따는 데에만 열중한다. 딱딱한 커피 열매가 내 손끝을 자극한다. 손가락 끝에 힘을 주어 뚝뚝 따낸다. 가지가 잘 휘기도 하지만 잘 부러지기도 한다. 더 많이 따고 싶지만 허용되지 않는다. 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에 철수 하라는 전령으로 HAKBIT 작업장에 모인다.

 

갓 따온 커피체리를 펼쳐놓고 1차로 관능검사 하는 체험.

각자 따온 커피를 현지인이 익지 않은 커피를 솎아내고 무게를 달아본다. 1 kg 안팎이다. 잠시 후 현지 어린이가 커피를 따온다. 저울을 다니 약 5kg의 무게가 나간다. 1kg에 us$0.40을 쳐준단다. 저울을 단 동안 열매를 따온 어린이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다. 생계와 직결되는 수입이기 때문이리라. 이곳 공무원, 회사원들의 월급이 US$120여불로 하루 US$5이 채 안된 돈으로 살아가야하다고 하니 이 어린이의 5kg의 수입 us$2.00은 쾌 큰돈이리라. 공정무역의 결과가 아닌가?

농민들이 수확한 커피의 무게를 측정하고, 기록하는 모습

 

2005년 YMCA는 생두(red cherries)를 현지 각각의 생산자로부터 구매를 시작했다고 한다. 2006년 카브라키(Kablaki)에 최초로 YMCA의 커피 처리시설을 세우고 익힌다. 이는 각각의 농민의 독립심을 키우고 YMCA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기 위하여서다. 또한 품질 유지를 위한 생산농민의 교육도 함께 시작하였단다.

카브라키 마을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소를 가리키는 표지판.

2007년 카브라키에서 2시간여 거리인 로뚜뚜(Rotuto)에도 YMCA의 커피시설을 세운다.

이러한 일련의 시설과 교육훈련 등은 민주적 상호소통과 이해를 돕고 문제 발생 시 양측의 원만한 문제 해결을 조정하고, 생산농민의 자주적인 능력을 배양하고, 독립적이면서도 상호 협동을 기하자는 기치아래 YMCA의 사업은 이곳 동티모르의 외딴 카브라키와 로뚜뚜에서 그 둥지를 틀었단다. 그리고 생산력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조직을 개편하기 시작한다. 이른바 소그룹으로의 재편이다.

로뚜뚜에 2009년 2개 그룹을 만들고, 2013년에 4개의 그룹을 다시 조직하고 2014년에 1개 그룹을 조직하여 로뚜뚜에 총 7개의 그룹을, 그리고 2014년에 카브라키에 새로운 2개 그룹을 조직하여 도합 9개의 그룹으로 생산자그룹을 재편하니 2011년까지 YMCA 직영체제에서의 연 36통의 생산량이 2014년도에는 42톤의 생산 실적을 시현하는 괄목할만한 생산 증가를 시현하여 생산 농민의 소득 증대와 함께 지역 복지개선에 돌입한다. 공동체 조직 및 운영, 의료, 태양열 시스템 지원 등 공동체 지원과 함께 커피의 원산지다운 커피 생두 처리 생산, 수출, 로우스팅 등 시설 확충으로 명실공이 커피 원산지다운 모습으로 변신을 시도하며, 지역 문화, 고용, 청소년 활동, 커피숍 문화 확산 등 의욕에 찬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보고를 듣고 이구동성 감탄과 격려의 박수로 보고회를 마무리한다.

소그룹 참여 농가의 모습.

 

이어 현지에서 느리게 걷기를 하며 마을을 산책한다. 학교 교실을 들여다보며, 때마침 놀고 있는 학생들과 어우러져 비록 말은 통하지 않지만 우리의 존재를 아는 듯한 학생들은 우리와 매우 쉽게 어우러진다. 함께 맑고 밝은 표정으로 함께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한다. 참으로 평화스럽다. 이게 진정평화가 아닐까? 이곳에 사는 이분들의 행복도(度)가 얼마나 될까? 혹시 덜 행복한 사람들이 더 행복한 사람들을 돌봐준다는 역설이 아닐까? 1시간이 넘는 마을 산책에서 우린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 느끼며 고원지대의 맑고 깨끗한 분위기를 흠뻑 들이마시며 숙소로 귀환한다.

(좌)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아이들의 미소. (우) 마을 사람들과 함께 찍은 단체사진.

 

그리고 저녁 식사다. 뷔페식의 음식 3가지가 우릴 기다린다. 상추 위에 얇게 썬 토마토를 얹은 요리, 볶은 밥, 누들 볶음 그리고 닭고기와 감자 삶음의 요리다. 일행 모두 맛있게 먹는다. 현지 음식 안주를 곁들인 저녁 반주의 시간은 늦게 까지 지속된다. 그리고 밤하늘을 즐긴다. 해발 1,400여m의 청정지역에서 쳐다본 밤하늘의 모습, 영원히 잊을 수 없으리라. 은하수가 흐르는 하늘 그것 바로 자연의 신비로운 모습이리라. 셀 수 없는 무수한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듯 하니, 우리 입에서도 저절로 감탄이 쏟아져 나온다. 감탄의 전이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그 곳은 바로 우리인간이기 때문에 그 장관을 감상할 수 있으리라.

귀환의 시작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현지인들과 이별을 한다. 퍽이나 아쉽다. 그리고 딜리(Dili) 까지의 귀환길, 3대의 대상(隊商) 행렬이 달린다. 먼지가 앞 창문을 가린다. 마치 짙은 안개가 끼어 속도를 줄여야 하는 것처럼 순간적으로 달려드는 앞차의 먼지가 뒤차의 앞 유리창을 덮치자 속도를 크게 낮춘다. 그렇게 3시간 여 끝에 가는 길에 묵었던 호텔(Pousada de Maubisse)에서 점심을 먹는다. 한 시간이 넘는 휴식 끝에 다시 달린다. 그리고 오후 4시경 딜리(Dili)에 당도한다. 아침 8시 30분경 출발하였으니 7시30분여의 끝에 점심시간 1시간 30분을 제외하면 6시간 동안에 약 120km를 달려왔으니 시간당 20km의 속도다. 과히 달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1960년대의 우마차의 바퀴가 굴러가는 속도다.

딜리 시내의 가판대에서 판매하는 과일,채소 등.

 

딜리호텔에 묵는다. 해안가에서 멀지 않다. 호텔방에 들어서니 모기가 반갑게 맞이한다. 가져온 모기약을 뿌려댄다. 뎅기열이 무섭단다. 저녁 현지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호텔로 돌아와 근처 해변을 걷는다.

저녁시간이었지만 산책을 하는 분들이 꽤 많다. 김기연 간사님은 안전에 신경을 곤두세우신다. 저녁시간 대에의 외출을 매우 꺼려하신다. 그러나 오늘밤 일행 함께 걷는다. 우연히 한국인 네 분을 만난다. 연세가 다소 드신 시니어 분들이다. 코이카(KOICA)활동을 위하여 오신 분들이란다. 매우 밝은 표정들에서 그분들의 긍지와 만족감을 읽을 수 있겠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호텔 라멜라우 내에 코이카(KOICA) 사무실이 있는 등 동티모르의 코이카(KOICA)활동이 매우 활발한 것 같다.

호텔 근처의 해변은 잔잔한 파도로 마음까지 잔잔하게 했다. 바다를 거닐며 다음날 일정을 기대해본다.

 

다음날 일정이다. 일본 한 생협이 공정무역 -ATT (Alternative Trade Timor) -파트너로서 삼고 있는 그 현장을 가는 일정이다. 함께 온 두레생협의 채은아 대표께서 안내를 맡는다. 딜리 외곽의 엄한 검문을 거쳐 기분 좋은 포장도로 길을 달린다. 신기할 정도다. 그러나 웬걸 다시 티모르의 울퉁불퉁한 길이 나타나더니 또다시 아스팔트길이 나타나곤 한다. 이곳이 아마 훨씬 더 발전 된 것 같다. 곳곳에 도로공사가 진행 중이다. 내비게이션에도 없는 길을 찾아가다보니 딜리의 ATT 현지직원이 안내하고 있음에도 중요 갈림 길목에서 기다리다 우리 일행을 안내한다.

 

약 3시간여의 주행 끝에 에르메라(Ermera) 한 시골마을 마을회관에 도착한다. 새로 지은 듯한 마을 회관의 번쩍번쩍 반사되는 양철지붕이 이곳 마을의 소득 증대를 뽐내는 것 같다. 마을 전체 주민들이 환영 나온 느낌이다. 참가한 인원수를 헤아려보니 약 35명이다 이곳 마을의 전체 주민이 100여명이라고 하니 약 1/3이 환영을 나온 셈이다. 그들의 커피사업에 대한 관심을 읽을 수 있겠다. 현지 디렉터의 인사말과 채은아 대표의 인사말 후 성찬으로 준비한 점심을 먹는다. 모두들 둘러앉아 먹지만 언어의 장벽으로 대화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함은 안타깝다. 그 식사에 대한 보답으로 US$150을 시니어 일행 중 한분이 쾌척하였단다. 그리고 현장 체험이다. 커피나무가 로뚜뚜의 그것보다 더 튼튼하고 열매 씨알도 더 굵고 색깔도 좋다고 한다. 현지인들과 어울려 체험행사를 한 후 마을 회관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우기에 파인 길들이 방치되어 극심하게 흔들리는 차 속에서 새마을 운동을 떠올리며 딜리(Dili) 로 향한다.

저녁 현지에서 YMCA의 학생봉사대로 활동하고 있는 남녀대학생 네 명과 우리 일행 등이 저녁을 함께 한다. 6개월간의 활동을 마치면 귀국한단다. 함께 간 박새롬양도 학생시절 현지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어 동티모르와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채은아 대표께서 그들을 격려차 한턱 쏘는 저녁식사이다.

 

이제 공식 일정을 마치고 귀국만 남았다. 그러나 뜻하지 아니한 뉴스가 날아온다. 발리 공항 인근의 화산이 폭발하여 화산재로 공항이 폐쇄되었단다. 처음엔 오후 4시까지 그리고 그 이후 더 늦어진다. 다음날 공항으로 그 다음날도 공항으로 나갔지만 항공사 스리위자야 sriwijaya와 Dili공항의 원시적 정보로는 도저히 귀국길에 오를 수 없을 것을 판단하고 하는 수 없이 이틀 후 싱가포르 항공 자회사인silk air 항공편을 이용하여 발리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싱가포르로 경유 귀국한다. 불가피한 자연재해 등으로 이틀간이나 지연된 상황이었지만 현지 한국대사관의 참사관 지원과 대사님 면담을 통한 현지 사정 등은 보다 더 알찬 정보를 담게 되었다. 이 란을 통하여 주 동티모르 한국대사관 대사님과 참사관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인천공항을 통하여 예정보다 이틀 늦은 15일 아침 인천공항에서 다음을 기약하며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출국 전 마지막 단체사진. 표정 속에 즐겁고 유익했던 일정의 감동과 아쉬움이 가득하다.

8박 9일 긴 여정동안 우리는 공정무역의 가치를 직접 확인하며 공감하는 아주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그 여정을 대변해줄 수 있는 공정무역에 대한 (주)카페 티모르 조여호 대표이사의 인터뷰 기사를 요약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려 한다.

「시장 구조에서 소외된 생산자들에게 정당한 몫을 지불하는 공정 무역. 세계화와 자유 무역에서 비롯된 제 3세계 빈곤과 노동력 착취, 환경 파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겁니다.(중략) 우리나라에 공정 무역 커피가 알려진 것은 2006년 한국 YMCA 전국연맹이 동티모르에서 커피 사업을 시작한 이후부텁니다.」

"(2004년, 동티모르 대통령이) 동티모르의 어려운 환경을 NGO가 도와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이 되었는데 동티모르가 유일하게 수출이 가능한 농산물이 커피였습니다."

YMCA는 단순한 원조가 아닌 동티모르 사람들의 자립을 키워줄 수 있는 공정 무역을 시작해 동티모르 로뚜뚜 마을과 카브라키 마을 농민들이 손수 수확한 고산 지대의 유기농 커피를 정당한 가격으로 수입합니다.

또, YMCA는 사회적 기업인 카페 티모르를 설립해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한 수익금으로 동티모르 커피 산지에 학교와 우물, 태양광 발전소를 세우는 등 마을 만들기 운동을 하며 2차적 지원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조여호 대표 / YMCA 사회적 기업 <카페 티모르>

2015.07.03

한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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